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무라고우치 마모루 대작 사건 (문단 편집) === 니가키 다카시 === 니가키 다카시(新垣 隆)는 1970년 9월 1일 [[도쿄도]] [[기요세시]]에서 태어났다. 도호가쿠엔대학(桐朋学園大学)[* 도쿄에 소재한 4년제 대학으로 음악관련 학과만 존재한다.] 음악학부 작곡과를 졸업했고 모교에서 비상근 강사로 재직하며 작품 발표와 연주 활동을 하였다. 그는 예정대로 자신이 먼저 이 사건을 털어놓았던 인물인 논픽션 작가 고야마 노리오(神山典士)가 동석해 열린 기자회견에서 니가키는 자신이 폭로를 결심하게 된 계기를 [[2014 소치 동계올림픽|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남자 [[피겨 스케이팅]] 대표 선수인 [[다카하시 다이스케]]가 (자신이 작곡한) 사무라고우치의 '바이올린 소나티네'를 연기 음악으로 골랐다고 주장했다. 이 소나티네는 사무라고우치가 장애인 음악 교육 센터에서 알게 된 한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헌정한 곡이었는데 그녀는 오른팔을 잃은 상태였지만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의수]]로 바이올린의 활을 켜면서 연주를 했기 때문에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아 쓰게 되었다고 홍보된 곡이다. 하지만 진짜 작곡가인 니가키는 이 곡의 홍보 과정을 알게 된 뒤 만약 사무라고우치가 진짜 작곡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해당 바이올리니스트가 알게 될 경우 매우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으리라 생각했다고 하였으며 사무라고우치는 헌정한 바이올리니스트와 그 가족들에게 점차 무리한 요구를 하였다. 결국 2013년 11월 사무라고우치 측이 일방적으로 절연을 선언하면서 파국으로 치달았다고 밝혔다.[* 이 대목은 기자회견 후반에 고야마에 의해 낭독된 니가키가 아닌 해당 바이올리니스트의 아버지가 기자회견 소식을 듣고 써 보낸 수기다.] 게다가 시사 월간지 '신초 45' 2013년 11월호에서 음악학자 노구치 다케오(野口剛夫)[* 니가키의 모교인 도호가쿠엔대학에서 음악학을 전공했고 작곡가와 지휘자로도 활동하면서 [[엘렉톤]] 합주단인 재팬 일렉트로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과 [[일본]] [[빌헬름 푸르트벵글러|푸르트벵글러]] 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다.]가 사무라고우치의 청각장애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기사를 실은 바 있었는데 사무라고우치는 이 소식을 접하고 니가키가 동요할 것을 우려했는지 '계속 작업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부부는 동반자살할 것'이라고 [[자살]] 협박까지 더해 가며 간청했기 때문에 일단 고스트라이터를 그만두겠다고 확언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다카하시가 사무라고우치의 곡을 선곡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되면 다카하시 역시 나와 사무라고우치의 뒷거래를 치장하는 장식물로 전락할 것이다'고 생각해 결국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했다. 또 지금까지 사무라고우치의 명성은 주로 일본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세계적인 경기 대회에서 사무라고우치의 음악이 쓰여 유명해질 경우 더 큰 불행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해서 고야마에게 자신이 사무라고우치의 고스트라이터로 일해 왔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밝혔다. 이어진 기자들의 질문에서 니가키는 자신과 사무라고우치 사이에 있었던 작업 동기와 과정 등에 대해 더 자세히 언급했다. 사무라고우치는 '''청각장애는커녕 멀쩡히 들을 수 있어서''' 자신이 대리 작곡해 준 작품을 들으며 요구 사항을 전달하는 '매우 정상적인' 상태로 작업했고 작품의 작업 노트 등 매스컴에 보여주기 위한 문서 자료는 사무라고우치가 작성하는 식으로 처리했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무라고우치가 '나는 청각장애인'이라고 선언하고 이것이 마케팅에 이용되자 점차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니가키는 이어 사례금과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1996년부터 지금까지 스무 곡 가량을 써주고 그 대가로 700만 엔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대표작으로 널리 선전되고 있던 교향곡 1번 역시 니가키가 작곡한 '현대전례'라는 교향곡에 사무라고우치가 'HIROSHIMA'라는 제목만 붙인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 곡으로 사무라고우치가 아쿠타가와 작곡상에 응모했다는 사실을 알고 상당히 당혹스러워 했다고 밝혔다. 또 사무라고우치는 자신이 매우 어릴 적부터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실제로는 피아노 실력도 그냥 초보자에 지나지 않고 그가 썼다는 자필보도 모두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고스트라이터 기용과 관련된 법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질문은 아직 잘 모르겠다면서 다소 두루뭉실한 식으로만 답변했고 사무라고우치 명의로 발표된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저작권]] 주장이나 추가 저작권료 요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런 일로 사무라고우치에 대한 원한이나 분노 같은 것은 느끼지 않고 있고 그는 프로듀서로서 자신의 작업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식의 긍정적인 평가도 일부 했다. 니가키는 기자회견장에서 향후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 '도호학원 음악대학 측에 전화로 비상근 강사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고 대답했다. 대학 측도 니가키의 퇴임을 결정했지만 학생들이 온라인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퇴임 반대 여론이 많아 며칠 뒤 결정을 번복했다. 하지만 니가키는 자신이 고스트라이터로 벌여 놓은 문제의 매듭을 짓고 싶다면서 13일에 대학 측에 공식적으로 '3월 말에 퇴직하겠다'는 내용의 사직서를 제출했다. 만약 니가키의 말대로 사무라고우치가 고스트라이터 기용뿐 아니라 청각장애인 [[코스프레]]까지 했다면 사무라고우치는 그동안 일본 언론들이 '''일본의 [[베토벤]]'''이라고까지 치켜세운 대작곡가에서 한 순간에 추락할 수도 있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